행복물건개발자의 미래에 대한 생각: 나는 왜 이 것을 하는가

과거에 기술을 발전시켰던 이유, 미래에 기술을 발전시킬 이유

     최근 기술 분야의 화두는 무엇일까? 미래의 기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하나되어 있을까? 약 10년 뒤, 우리는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골목을 둘러보아야 한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욕구와 욕망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 자본주의가 더 이상 묶어 놓을 수 없는 개개인의 탈 물질화로 개인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 개인의 제조 역량 강화와 제조 단가 하락으로 인해 소품종 다량 생산하던 대기업의 설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개인의 다품종 소량 생산 가능해지고 있다. 요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들여다 보자.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모두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본능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만약 배고픔과 갈증의 고통을 벗어나고픈 본능을 거스른다면 아마도 며칠 가지 않아 다른 동물들의 본능을 채워주는 맛있는 먹이로 전락할 것이다. 이처럼 본능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우리의 DNA 에 깊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우리 종種 이 사라진다거나 돌연변이가 있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본능적인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것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 뚜렷해 지고 그 것을 위해서 자연스레 노력을 하게 된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잡초를 제거하고 가을에 추구하여 겨울을 대비하는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적어도 아주 먼 옛날에는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순간부터 본능은 아주 잘 충족이 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우리는 배고픔을 한 시간 이상 느끼면서 살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집 앞 편의점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것이다. 덥거나 추울 때 생존할 수 있을 만큼보다 훨씬 더 쾌적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안전하게 가정을 이루는 것도 성공적으로 정착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더더욱 본능을 잘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술을 발달하고 있다. 생명 연장을 하기 위해서 의학이 발달하고, 좀 더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기계를 도입했으며(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달리는 것보다 타는 것이 좀 더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에 이동 수단이 그토록 발달하였다. 한마디로 “현재까지 기술은 인간이 조금 더 편한 쪽” 으로 발달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우리의 역사는 본능을 넘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진보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술의 미래는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최근 인간 기술의 발전 방향

     우리는 배가 부르자, 욕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배가 부르고 할 것이 없으면 혼잣말이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든 요술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우리는 재미있는 것을 찾아 다니고, 전혀 생산적이지는 않지만 볼거리가 있는 스포츠를 즐기고, 그림을 그린다고 쌀이 나오는 것이 않지만 그 것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고 싶어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싶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예술, 문학, 철학, 심리학 등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물리학, 천문학등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내고 있다. 물리학이 현재 더더욱 발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먼 옛날보다 훨씬 오랜 기간, 안전하고 본능을 충족하며 살 수 있으나, 우리의 욕망은 그 것에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더더욱 우리를 그 무언가를 갖기 위해 달려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에, 우리는 물건에 대해 기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것을 받아들였다. 국자는 국을 잘 뜰 수 있다면 괜찮았고, 가위는 물건을 잘 자르기만 하면 좋았다. 스피커에서는 어찌 됐든 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됐고, 그냥 배만 부르다면 김치만 있는 쌀밥도 괜찮았다.
     이제 ‘기능’에 충실한 제품, 물건따위는 없다. 옷은 더 이상 인체의 보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떤 시대든 자신을 남들과 구별짓기에 대한 욕망은 있어왔다. 철학자 짐멜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들을 얻으면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을 짓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싶어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지만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쓰면서 다른 학우들과 달리 보이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관찰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처럼 ‘기능’으로써의 기술이 도달하면 그 후는 욕망으로써의 기술이 자연스레 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기술은 편리함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래 왔다. 최근, 인간의 심리를 읽고 반응하는 제품과 기술이 시중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MIT media lab 의 JIBO 로봇이나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가 세간에 얼마나 큰 화제가 되었는 지 보면 그 기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나와 친구가 되길 바라는 감성적인 마음, 누군가가 나의 시중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지배욕, 남들이 사지 않은 신기한 것을 미리 사 보는 것 등등, 너무나 당연히 우리는 본능 충족뿐만 아니라 욕구와 욕망에 대한 충족을 바라는 것이다. 고작 전화와 문자만 기능하였던 그 것이 지금은 누구보다 예쁜 디자인을 뽐내고, 손바닥만한 디바이스에 온갖 철학을 집약하여 출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더 이상 기능에 목매이지 않는다. 자동차도 예쁜 차를 타고 싶어한다.

앞으로 기술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할 것인가?

     점점 개개인이 컨텐츠를 생산 하기 편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1인 미디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할 수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매우 느렸으며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것은 TV와 비디오 가게였다. 미디어는 자본이 없으면 생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컨텐츠 생산과 소비가 점점 개인화 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이 것은 매우 중요하다.컨텐츠의 개인화는 자신의 욕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생산을 하든 소비를 하든 그 것을 개인의 몫이 된 것이다. 대 자본의 영향을 덜 받게 되었다.
     컨텐츠의 본질은 무엇일까?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 컨텐츠는 “재미” 다. 자신이 끌리는 대로 찾아 보는 것은 무엇이든 재미가 있다. 웃음 포인트를 못찾고 생각보다 덜 재미 있어도 괜찬다. 그 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 “재미있는것 없나?” 하면서 두리번 거리다 오늘은 별로 재미있는게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지루하지 조자 않는다. 이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재미있는 것을 찾는 과정도 즐긴다.
     컨텐츠 생산의 개인화. 이제 우리는 궂이 대형 방송국을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는 넘쳐 난다. 컨텐츠 큐레이팅 서비스까지 생겼다. 누군가를 재미있게 해 주고 인기를 얻고 싶은 사람과 재미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니즈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비단 “재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 예술, 문학, 이야기 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감동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컨텐츠가 주는 큰 힘이다.
     컨텐츠가 아니라 제조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그 것이 나에게 꼭 맞게 제조를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배포를 할 수 있으며, 배포 받은 사람이 감동, 행복감, 재미 등을 겪을 수 있고 배포자의 뿌듯함, 인기,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된다면? 개인의 제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싱기버스(https://www.thingiverse.com)라는  자신이 설계한 하드웨어를 공개적으로 올려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마치 자신의 노래나 그림을 유투브나 블로그에 올리듯 세계의 메이커(maker: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가 위 사이트에 올리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나 기능, 외형을 원했던 사람들이 다운받을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물론 무료다.
    3D 프린터와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와 같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기능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통해 제조의 벽이 마치 방송의 그것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3d 프린터는 아직 가정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비용과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이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누군가 나서서 긍국의 프린터를 만들 것이다. 마치 토너 프린터에서 레이저 프린터로 발전하여 1초만에 A4 한 장 쯤은 거뜬히 출력하는 것 처럼, 눈 앞에서 자신의 모형을 눈 깜짝할 사이에 출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술의 제약으로 아직까지는 3d 프린터가 크게 보급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 것이 보급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오픈소스 하드웨어 회로가 아직까지도 일반인에게 다가가기에는 어렵지만 매우 저렴하게 생산되고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그 것은 미디어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방향으로 발전될 것이다. 인간의 행복, 재미, 감동을 주는 그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프린터, TV,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휴대폰 등등 기능을 만드는 회사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가수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돈을 벌어 왔었다. 그들이 노래를 한다고 해서 들판의 벼가 더 자라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 더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영화나 음악, 예술 작품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자동화된 로봇과 첨단 기술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고 그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계에 비해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재미, 행복, 기쁨, 슬픔, 소속감 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미래의 직업은 두 가지로 좁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예술가와 철학자. 내면의 목소리와 통화하게 해 주는 철학, 내면의 목소리를 외부에 연결하는 예술, 그리고 그 것을 다시 다른 사람의 내면에 선물하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인본주의, 신본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이제 감본주의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먹을 것을 선물했지만 이제는 영화 티켓이나 귀금속을 선물한다.

내 두 손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주는 물건을 만든다

     나는 “행복물건 개발자”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주는 물건을 만든다. 비록 내가 가진 손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거나 힘이 세거나 기술이 좋거나 피부가 곱거나 악기 연주를 잘 하거나 글을 잘 쓰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예쁘고 멋지고 잘 동작하며 감동과 행복을 주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잘 한다. 나는 죽기 전까지 내 가족을 위해 행복한 물건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가?” 나는 이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기존의 기술 개발 과정과 비슷한 질문이다. 기능에 충실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대기업의 그 모습과 비슷하다. 일단 잘 만들어 보고 그 것이 어디에 쓰일지를 붙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누구를 위해서 왜 그것을 만드는가?” 내가 좋아하는 질문이다.
     나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행복물건을 만든다. 아마 영화 배우나 감독, 작가, 예술가의 그 마음과 같을 것이다. 컨텐츠 큐레이팅, 그들은 감동과 재미, 인간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기술적 큐레이팅, 세상의 갖가지 기술을 모아 모아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큐레이팅,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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