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관점과 멀미

International food market

오늘은 큰 장터가 열렸다. 내가 살고 있는 핀란드 오울루 지역에서 매우 큰 규모의 국제 음식 행사가 열린 것이다. 수 많은 천막들이 있었고 중간에 한국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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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가면서 버스를 탔다. 항상 차를 운전하던 터라 버스 멀미가 났다. 게다가 나는 거꾸로 가는 방향의 좌석에 탔기 때문에 더더욱 멀미가 났다. 관점이 바뀜으로 인해서 생기는 멀미. 균형을 잡는 기관과 시각적 정보 획득의 정보 싱크가 잘 맞지 않아서 생겨서 머리가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나는 차멀미가 심했다. 차만 타면 항상 멀미를 할 것 같고 특히 버스만 타면 꼭 구토를 하곤 했다. 그 때의 그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불쾌해서 다신 경험하고싶지 않은 그런 경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쯤인 것  같다. 항상 멀미에 신경쓰던 내가 어느 새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참 신기했다. 갑자기 약을 먹은 것 처럼 또렷하고 말짱했다.

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는 버스를 잘 타지 않기 시작했다. 어릴 적 그 멀미의 기억이 별로 좋지 않기도 했고 몇 시간동안 나에게서 자유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가고 언제 멈추는 등의 결정을 내가 바로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나는 운전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문득 어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멀미나는게 불편하고 싫어서 어릴 적에 아예 차를 타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멀미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하는데, 차만 타면 멀미를 하기 때문에 그게 너무 두렵고 힘들어서 아예 차를 타는 것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마도 현대 문명의 좋은 점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질문이 생겼다.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적 관점을 여기에 적용해 보자면, 나는 차를 타기 싫어서 멀미를 생기게 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런 경우에는 목적론을 투영하기 다소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것은 당연한 신체적 반응이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은, 인과관계가 너무 뚜렷한 자연법칙이나 건강상태 등에는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차, 이 것은 심리학이구나. 그렇다. 사람이 어지러운 데에는 어지러워야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아 어렵다. 어려워. 어렵다.

어쨌든 나는 내 멀미를 차를 멀리하는 데에는 쓰지는 않았다. 아무리 멀미가 나도 가고 싶은 곳은 가야했기 때문이다. 결국엔 멀미는 내 목적을 이루는 데에 영향은 끼쳤지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성가시지만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내 행동에 있어서 내가 멀미 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것들이 내가 생각하거나 경험하는 데에 빠른 포기를 하도록, 혹은 맨 뒤의 옵션으로 두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많이 있는 것 같다. 초행길을 나는 두려워한다. 운전할 때 처음 가보는 길,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운전하려면 마음이 아주 많이 부담스럽고 겁이 난다. 그래도 꿋꿋이 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자, 이제 멀미 덕분에 잘 알게 되었다. 멀미는 나의 문제다. 겁도 나의 문제다. 목적을 제대로 잡고 그 목적만 생각하자. 중간에 배멀미를 하던 차멀미를 하던 겁이 나던 그 것은 나의 문제일 것이고, 나는 멋진 목적, 멋진 미래를 그리는 데에 촛점을 맞추자. 거기 가는데 무서워서 그 목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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